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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스캔들, 스캔들의 신학

글쓴이 : 연구소 날짜 : 2014-02-07 (금) 22:02 조회 : 4310
11.jpg (67.5K), Down : 0, 2014-02-07 2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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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 신약학)가 ‘스캔들’이라는 이름의 지도를 가지고 성서와 성서 바깥의 세계를 탐험해 나간 신간 <신학의 스캔들, 스캔들의 신학>이 나왔다.
 
‘스캔들’ 하면 대개 생각나는 말은 ‘정치 스캔들’ ‘연예 스캔들’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이 ‘스캔들’은 ‘기존의 생각을 전복시킬 만큼’ 강력한 어떤 것이기도 하다.
 
신약성서에서도 스캔들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의 어원인 희랍어 ‘스칸달론’이 명사로 15회, 동사로 29회 사용됐다. ‘넘어지게 하다’, ‘걸림돌’이라는 뜻이고,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계될 때만 긍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스칸달론의 뜻인 ‘걸림돌’에 걸리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기존에 좋았던 것이 걸림돌에 걸리면 나쁘겠고, 기존에 나빴던 것이 걸림돌에 걸리면 좋은 일일 테다. 이처럼 “‘스칸달론’은 양날의 검처럼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개념이다. 약이면서 동시에 독인 플라톤의 ‘파르마콘’의 비유처럼.” 그리고 이 개념이 가진 역설의 힘으로 신학의 제반 관심사를 가로지를 때 “새로운 해석학의 미래를 개척할 만한 ‘창조적 메타포’로서의 가능성”이 발견된다고 차정식 교수는 주장한다.
 
말하자면 “신학적 메타포로서의 스칸달론은, 생활세계와 사유의 지형을 헤치면서 보듬고 억제하면서 가로지르는 정중동의 생성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스캔들을 중요한 신학적 개념으로 포착한 사람은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Girard)였다. 그는 3자간 모방적 욕망의 상승 작용을 통해 만인 대 만인의 싸움이 벌어지는 하극상의 세상 현실에서, ‘희생양’을 통해 그 구도를 일인 대 만인의 싸움으로 바꾸어나가는 것에 대해 말한다. 기존의 모방적 욕망의 소용돌이 가운데 심화되어 가는 폭력의 구조의 혁파는 아무도 모방하지 않는 상태의 추구로써 가능해지는데, 그것의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하나님을 닮고자 한 예수의 삶과 죽음”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지라르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어떻게 모방적 욕망의 소용돌이를 끊는 긍정적 스캔들이 될 수 있었는지 깊이 통찰하지 못했으며, 예수의 무죄한 죽음이 어떻게 또 다른 창조적 스캔들로 기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이번 책에서 자신이 그 통찰을 시도한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성서 속 스캔들의 원형으로 제시하고, 그것이 세상에서 갖는 의미는 갖가지 가짜 스캔들-겉만 번지르르한 교회, 신학, 세상-을 전복시킬 희망의 스캔들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스캔들이 과잉으로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스캔들은 예외 없이 스캔들로서의 최소한의 진정성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지루하게 반복된다 … 성서의 역설적 의미로서 제출된 스캔들은 관계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커다란 초석적 스캔들을 모방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 초석적 스캔들은 바울신학의 체계 내에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아무것도 모방하지 않는 것을 온전한 신앙의 철칙으로 삼았다. 모방이 없는 욕망의 모방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해 위대한 스캔들이 될 수 있었던 전복적 역설의 배경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 자리에 엉뚱한 짝퉁들을 가득 채워놓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닮으라고 채근한다. 맘몬의 자본제적 체계에 저당 잡힌 채 부흥, 성공, 축복 등 각종 간편한 구호들을 내걸고 가짜 욕망을 양산하며 그것을 모방하라고 부추기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병통도 바로 그 언저리에 걸려 있다.”
 
책 1부에서는 신학적 스캔들의 원형으로서 예수와 바울의 경우를 다룬다. 2부에서는 ‘잠과 꿈’ 같은 일상적 생활이나 ‘광야체험’ 같은 성서 속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신학적 메타포로서의 스캔들을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