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공허해지면 찾아보는 책이 있다. 저자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의 『삶이 메시지다』(포이에마)이다. 맑은 녹차 한잔을 마신 듯,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마치 산사에 고승을 만난 듯하다. 치열했던 삶의 트랙에서 잠깐 벗어나, 자연스레 묵상을 하게 된다. 속세를 떠나 산사에 오른다는 건, 세상을 등진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을 떠났을 때에야, 지금껏 살아왔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산으로 부르신다. 그리고 전해주시는 산상수훈은, 다름 아닌 우리 삶의 강령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제자라면 마땅히 살아내야 할 가르침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그 전에, 우리가 살아온 삶은 과연 어떠했는가. 제자들은 세상의 무리에 묻혀 흔적을 감춘 듯 보인다. 빨리빨리. 많이많이. 다른 짓 할 여유가 어디 있어, 일해야지. 산으로 올라가 삶을 돌아볼 생각 여유는 없었다. 주일마다 받는 말씀은 인스턴트처럼 간단하게 받아들여지고, 또 사라졌다. 사람도 마찬가지였구나. 이제는 내면을 바라보기가 힘들다. 필요한 것은 시간일진대, 허튼 데 낭비할 시간이 없다. 겉모습과 첫인상만으로, 재력과 권력의 높고 낮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고은 시인은 ‘하류는 위대하다’고 노래한다. 하류는, 모든 잡다한 것을 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며, 자리를 잃고 떠밀려온 모든 것들을 한데로 모아 흐르게 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 김기석 목사는 여기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분은 창녀와 세리들에게 옆자리를 내어줄 줄 아셨던 분, 과부의 두 렙돈을 '가장 크다'고 여길 줄 아셨던 분이었다. 우리의 세상 규칙을 단호히 거부하고, 새로운 ‘사랑의 법’을 세우신 분이셨다. ‘떡으로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을 말씀하셨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치를 찾을 것을 말씀하신 분이셨다.
그래, 그래서 예수님처럼 살라는 거다. 남들을 각진 눈으로 보고 판단하지 말기.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여백이 있는 사람이 되기. 그래서 이웃이 설 자리가 되고, 돌볼 줄 알기. 또한 불의한 세상에 분노하고 저항할 줄 알기. 어떻게?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불의한 세상에 대해 분노하되, 사랑하면서 싸우기. 그리고 손해 보기.
좋다. 모두가 아니라도, 10명 중 1명만이라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세상은 한결 아름다워질 텐데. 하지만 말이 쉽지, 하루 이틀은 그런대로 눈 딱 감고 양보하고 손해 볼 순 있어도, 평생을 손해보고 산다는 건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언제까지 오른 뺨을 맞고도 왼 뺨을 돌려댈 것인가? 나만 바보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 자신을 보지 않으셨다. 하늘에 계시다 내려오셔서 그런지는 몰라도,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모습을 보셨다. 나은 모습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우리에게까지 그 사명을 이어주고 계시지 않을까?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삶이 메시지다』를 묵상하면서 발견한다. 참으로 두근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삶으로 번역되지 않는 말은 공허할 뿐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은 잘 해”, 어디선가 들었던 듯, 낯설지 않은 말이다. 더 이상 말뿐인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치열함이 없이는 자아를 벗을 수 없단다. 작심삼일일지언정, 오늘도 나를 치열하게 닦아본다.